한일합동교육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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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아버지의 편지' 를 읽고 Monday, 07.04.30 ( 1260hit )

아버지의 편지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

내가 “아, 이제 우리가 어른이 된 거구나!”라고 느꼈던 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대학 2학년 때인데, 동향인 학교 선배가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거였다.
“우리 아버지를 분석해 볼 때, 말이지… 몰락한 농촌 출신으로 도시에 와서 천민적 성격의 자본을 축적하였고, 거기에서 성공을 거두어 계층 상승에 성공한 신흥 소시민이라 할 수 있지.”
그 말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버지를 거리낌없이 객관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데 있었다. 선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 아버진 계급적으로는 쁘띠 부르주아지만, 의식은 반봉건적이지. 적어도 소시민들은 형식 민주주의를 옹호해야 하는 거거든….”
선배의 아버지는 우리 고향 제주에서 부유한 축에 드는 문구 도매상이었다. 시내 번화가의 큰 매장에서 바삐 움직이던 호랑이 같은 분. 나는 선배의 말에 놀라기만 했을 뿐, 비슷하게 아버지를 분석해볼 엄두는 내지 못하였다.

분석 대신 아버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이해해보려고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때가 있었다. 그게 철이 드는 때일까. 4남매의 막내딸이었던 나에게 아버지는 엄하면서도 꼼꼼하고, 술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교육열만큼은 대단한 분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내 가장 오랜 기억은 아버지 손가락을 붙잡고 걷던 골목길이다. 왜 그날의 길이 가장 기억에 남았을까? 이유가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나에게 싼타루(아마 샌달의 일본 발음일 거다.)라 불리던 빨간 에나멜 구두를 사주신 것이다. 넉넉지 않은 집에서 그 반짝반짝 빛나던 구두는 정말 꿈 같아서, 어린 나는 절로 입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서른 일곱 여덟쯤. 나는 서른 예닐곱의 젊은 가장이 새 구두에 좋아서 뛰는 어린 딸 손을 잡고 걷는 그 골목길과 그의 뒷모습을 상상해본다. 어땠을까, 그의 마음은.
아버지는 젊었을 때 제주에서 4.3사건 등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 어머니와 누이를 잃은 분이셨다. 똑똑하고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지만 가난 때문에 꿈을 펼칠 수 없었던 분이다. 강직한 성품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할 말은 기어코 했지만, 자식들 앞에서만은 또 약해지던 아버지.

80학번으로 대학에 들어와 한창 학생운동을 하던 나는 고향 제주에 갔을 때마다 아버지에게 열을 내면서 말했다. 광주사태가 어떻게 벌어졌으며, 한국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하고,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등등. 설익은 논리도 많았지만 아버지는 한번도 그걸 잘못되었다고 야단치지 않았다. 내 생각을 존중해 주셨고, 지인들에게 내 주장을 대견하다는 듯 전해주시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운동을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거나 태만히 하는 것만은 엄격히 반대하셨다. 한 번은 내 얘기를 듣고 나서 이런 질문을 하셨다.
“얘야, 네가 지금 거리에서 외치면 한낱 운동권 학생이라 연행해 가버리면 끝이겠지만, 만약 변호사가 되어 똑같이 그 주장을 펼친다고 생각해봐라. 어느 쪽이 사회에 더 큰 영향을 주겠느냐?”
참 지혜로운 말씀을 하신 것이다. 비록 ‘지금 당장 행동하고 바꾸기를 원하던’ 내 열정은 그 말씀에 따를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4학년 2학기에 내가 학내 시위에 연루되어 무기정학을 받은 것이다.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지만, 책망은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운동권 딸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셨는지는 훨씬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마 그 후 7,8년쯤 되었을 것이다. 고향집에 갔다가 서랍 속을 오랜만에 정리하다가 오래된 편지들을 보게 되었다. 거기엔 뜻밖에도 우리 교수님이 아버지께 보낸 편지가 있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아버지가 교수님께 내가 대학원 진학을 해서 계속 학업을 할 수 있겠는지 타진한 편지를 보냈고, 그에 대한 교수님의 답신이었다. 이상하게도, 아니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교수님은 너무나 냉정하게 “그 아이는 학문에 뜻이 없을 뿐 아니라, 학문적 자질도 없다.”고 분명하게 쓰신 것이었다. 특히 ‘학문적 자질이 없다’는 대목을 읽을 때는, 정말 한 대 맞은 듯이 가슴이 아파왔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걸 읽으면서 낙담하였을 아버지의 큰 한숨이 대번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유일한 자긍심이었던 아버지. 교수님의 답장은 거기에 상처를 주는 것이었고,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내 대학원 진학을 상의했다는 말씀을 절대 입밖에 내지 않으셨다.

자식을 키우는 중년의 부모가 되어 이제 나는 나를 돌아본다.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그런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고 있는가. 타인으로부터 실망스러운 피드백을 받아도 묵묵히 감내하며 자식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배려할 수 있는가. 자식에게 아버지는 넘어야 할 산이라고 한다. 넘어야 할 산이므로 당연히 더 크게 보이고 높아 보인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그리워하게 되는 저녁이다.     - 리더십 웹진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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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도 멀었나봅니다.
이 글을 읽고 평범하게 넘어가야 하는데 맘에 걸리는게 많네요. 자식 이기는 사람 없다지만 자식을 저리도 가슴에 품고 든든한 의지가 되어줄 수 있다는게 참 많은 수양을 필요로 하는게 것같아서요.
생각나는대로 말해버리던 내 모습이 부끄럽구요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문제학생 부모를 상담하고 나면 내뱉곤 하던 말이 이젠 거꾸로 내 얼굴에 돌아오는 것같은 기분입니다. 책에서만 읽고 듣던 역할이 내게서도 나와야 하는데.......
이제라도 반성하며 다짐하는 자세로 올려봅니다.


송석종   자식을 기르면서 무조건적 사랑을 하면서 마음 아퍼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묻어있는 글입니다. 그저 우리들은 자식들이 꿈이라는 나침반을 갖고 바다를 항해할 때 쉴 수 있는 항구 노릇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우리들의 기쁨, 자랑, 면류관으로 생각하고 지지 격려하는 입장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200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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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timony - Father forgive them(Luke 23:26 - 56 Key verse 34a) 송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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